
고동연 (미술비평)
그리고 예술이 그러한 치유의 보탬을 준다는 오유경의 예술관이 더욱더 신선하다. 우주의 순환논리나 에너지를 전혀 다른 여성성의 관점에서 접근해볼 수는 없는가? 양자 역학을 여성 예술가와 연관시킬 수는 없는가?
고동연 (미술비평)
서양의 고전적인 과학이론이 국내에서 재차 관심을 끌면서 최근 양자 역학(量子力學, quantum mechanics)이 미술계에서 다시금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양자 역학은 동양철학에서 강조해온 유동적이고 개방된 세계관과도 맞닿아 있기에 국내 예술가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1910년대 입자성과 파동성의 이론은 서구 과학이 추구해온 실증주의나 확실성에 정면으로 반한다. 또한 양자 역학은 관찰자의 상대적인 관점이나 측정과 기대치라는 이중적인 기준을 과학에 도입하면서 절대적인 진리나 사실을 부정하였다. 세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과 주체적인 관점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예술가들의 관심을 이끌만하다.
2021년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커미션 작업으로 미술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오유경(1979-)의 미술을 양자 역학과 연관해서 언급하는 것은 우선 그가 젊은 세대의 예술가로서는 드물게 지난 20여 년간 지속해서 에너지의 예상치 못한 흐름에 관심을 지녀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잉여 에너지라고도 할 수 있는 각종 ‘기(氣)’가 인간을 치유할 수 있다는 그의 관점도 흥미롭다. 흔히 양자 역학을 언급하는 예술가들은 에너지가 포화한 엔트로피(Entropy)적인 상태나 폭발이 일어나는 극적인 상황을 남성적인 언어로 표현하고는 한다. 이 때문에 불규칙하게 떠돌아다니는 에너지를 가지고 세상을 치유한다는, 그리고 예술이 그러한 치유의 보탬을 준다는 오유경의 예술관이 더욱더 신선하다. 우주의 순환논리나 에너지를 전혀 다른 여성성의 관점에서 접근해볼 수는 없는가? 양자 역학을 여성 예술가와 연관시킬 수는 없는가?
에너지의 얽힘: <회복의 프로젝트> ~ <우주의 얽힘>
2006년 프랑스 유학 당시 전시했던 <회복의 프로젝트>는 버려진 의자를 붕대로 싸맨 작업이다, 버려진 물건을 보듬고 감고 하는 과정이 예술가의 할 일이라고 작가는 믿고 있다. 흔히 현대미술에서 ‘레디메이드’는 일반 기성품이 갤러리의 어울리지 않는 장소로 위치 이동하면서 예술적인 지위를 부여받게 된 경우를 일컫는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우연히’ 주운 의자를 붕대로 싸매는 행위는 레디메이드가 예술품으로 지위를 보장받게 되는 과정과는 다른 미학적이고 정서적인 의미를 지닌다. 오유경은 자신을 연금술사에 비교하고는 하는데, 이때 레디메이드는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이 인간과 에너지를 주고받는 주체이자 객체가 된다. 개념적인 의미에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접근하는 레디메이드에 비해서 훨씬 따뜻한 의미를 지닌다. 실제로 오유경은 창작의 과정을 에너지를 물질과 공유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오유경이 에너지에 관하여 관심을 지니게 된 것은 그가 인도 라다크 지역의 고산지대를 여행할 때였다. 고도 4천m에서 5천 미터를 올라가면 숨쉬기가 어려워지고, 신체를 둘러싼 중력이나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몸소 느끼게 된다. 모든 것이 고요해진 상태에서 모순되게도 공기가 희박해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공기의 흐름과 무게에 인간은 민감해지게 된다. 이때 모든 물체는 과거와 현재를 스쳐 지나간 수많은 인연의 흔적을 담는다. 물론 서로 에너지를 교환하면서 말이다. 이 때문에 오유경의 설치에서 물질적인 견고함이나 물체의 닫힌 윤곽선은 무의미하다. ‘밀가루 프로젝트’의 부분인 <꽃의 세계>(2012)에서 작가는 원통형과 사각형의 각종 틀을 사용해서 밀가루의 모양을 잡은 후에 틀을 제거하고 밀가루 모형만을 전시했다. 전시가 끝나면 작가는 밀가루를 쓸어서 처리한다. 밀가루를 쓸어 담는 과정은 파괴적이라기보다는 전시 기간에 바닥에 남겨진 에너지를 쓸어모으는 과정이다. 작가는 빗질을 통해서 밀가루 모형을 파괴하면서도 동시에 숨은 에너지를 모으는 행위를 반복한다.
이처럼 에너지의 유기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재료는 중요하다. 오유경이 반사되는 아크릴이나 유리구슬과 같은 재료를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에너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일은 쉽지 않고 대신 대기를 비롯하여 외부의 환경을 반영할 수 있는 재료로 반사체가 적격이다. 양자가 서로 ‘얽힌 상태(entanglement)’를 연상시키는 <우주의 얽힘>(2015)에서 광택이 나는 표면 위로 주위 풍경이 투영된다. 관객은 자신과 타자의 몸, 주위 환경이 물체의 표면 위로 중첩되고 왜곡되며 흩어지는 장면을 관찰할 수 있게 된다. 위아래가 혼동되면서 무중력 상태와 같은 이미지상이 만들어지게 된다. 특유의 각진 형태는 투영된 이미지가 더욱 혼동된 아노미 상태에 처한 것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데에 있어 효과적이다. 흡사 견고한 물체, 신체가 대기 속에서 에너지와 만나면서 침투되듯이 말이다. 이것은 고전적인 물리학의 법칙에서 벗어나 양자 역학에서 말하는 서로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상태의 에너지들이 얽히고설키는 과정을 연상시킨다.
토털 이클립스: <바람의 탑> ~ <Being Connected>
반사 효과를 사용해서 공간감을 교란하는 수법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커미션 작업 <바람의 탑>(2021)에도 재차 등장한다. 제목에서 바람은 ‘바람’과 ‘바램’의 중의적 의미를 지니는데 하나는 불교에서 파고다는 구슬 모양의 유골인 ‘사리’를 모시기 위한 ‘바램’의 의미를 지닌다. 파고다의 또 다른 의미는 주위를 맴도는 ‘바람’의 에너지를 보존하는 저장고이다. 작가는 파고다를 미술관의 전시장 내부뿐 아니라 전시장 입구의 숲속이나 버려진 창고의 입구에도 세워놓았다. 작업을 둘러싼 주위 환경이나 공간의 변화가 유리구슬 안에 투영된다. 작가가 사진 기록을 강조하는 것도 구슬에 담긴 대기의 변화, 숲속의 기운, 전시장의 조명을 그때그때 보여주기 위함이다.
반면에 오유경의 최근 작업은 조감도와 같이 에너지의 흐름을 보여준다. <Being Connected>(2022)는 행성을 상징하는 듯한 거대한 구슬과 행성의 궤적을 보여주는 선들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는 2022년에 일어난 부분 개기월식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설명하는데 널빤지에서 파내어진 공란(음)과 널빤지의 표면(양)은 서로 깊게 연결되어 있어 상호보완적이다. 달이 지구 그림자에 가려지게 되면서 오히려 현상계 너머 달의 존재가 오히려 두드러진다. 고산지대에서 신체가 보이지 않는 산소나 중력의 에너지에 더욱 민감해지듯이 보이지 않는 에너지는 보이는 세계와 계속 의존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
이쯤 해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오유경의 작업 세계를 개념적으로 잘 보여줄 수 있는 영상 작업을 소개하고자 한다. 음과 양의 관계는 에너지를 표현할 때 중요하다. 공존하는 두 개는 상대가 비거나 사라질 때 오히려 두드러지게 된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소금 도시>(2017)에서 작가는 갯벌에 놓인 소금 도시가 10시간 만에 지구의 공전, 자전 에너지, 달 에너지의 작용으로 무너지는 과정을 기록한다. 하지만 소금의 도시가 사라지는 과정은 또 다른 의미에서는 복원과정에 해당한다. ‘소금’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달의 에너지에 따라 만들어지는 밀물과 썰물의 힘을 비로소 목격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양자 역학이 설명하는 바와 같이 현상계의 확실성에 대하여 딴지를 건다. 현상계는 반작용의 세계를 품고 있다. 이때 그녀의 작업은 파괴되는 순간만 보여주지는 않는다. 영상을 스냅숏과 같이 나 열한 스틸 사진 시리즈는 시작과 끝의 순환 구조를 한눈에 보여준다. 사라짐은 끝이 아니기에 자연스럽게 그다음 단계인 복원과 치유를 상상하게 된다. 예술가의 역할은 복원과 치유의 과정을 좀 더 매력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고동연 미술비평가 이화여대 겸임교수
오유경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환경조각을 공부하고 파리 8대학 대학원에서 조형예술학과 석사학위를,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조형예술학 국가학위(DNSAP)를 취득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Certain is nothing> (ASk, 서울, 2022), <Total Eclipse> (아트소향, 부산, 2020), <Chaotic but Poetic> (챕터투, 서울, 2017) 등이 있고, Apmap review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서울, 2022), <비정형의 향연> (갤러리바톤, 서울, 2022), <우주를 건너서> (부평아트센터, 인천, 2022), <Formes du transfers>, (Magasins generaux 팡탕, 프랑스, 2022) 등 국내외 주요 단체전에 초대되었다. 2022 부산문화재단, 2017 서울문화재단에서 전시지원 작가, 퍼블릭아트 뉴히어로, 2016 고양문화재단 신진작가로 선정되었고,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국립고양스튜디오 등 국내외 레지던시에서 활동했다.
1. <꽃의 세계>, 2012, 밀가루, 가변크기
2. <우주의 얽힘>, 2015, 아크릴
3. <바람의 탑>, 2021, 혼합매체 (구슬)
4. <Being Connected>, 2022, 설치
5. <소금 도시>, 2017,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