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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치유자일 수 있다(Artiste peut etre un guérisseur)

Cuvement(Cube+Movement), Paper, Electric fan, Variable size, 2007

심상용(미술사학 박사, 동덕여자대학교)

오유경은 화이트 큐브의 정체적 핵심에 결정적 타격을 가한다. 그 방식은 비닐 재질로 재현된 그것의 내면을 대기(大氣)보다 더한 가벼움, 부재보다 공허한 부재의 콘텐츠로 가득 채워 넣는 것이다. 헬륨 가스는 그 신념에 찼던 것의 내부를 다만 가벼움과 공허로 대체하고, 졸지에 유아용 놀이기구처럼 허공을 떠다니는 신세로 전락시킨다.

 오유경의 세계에서는 우리를 질식하게 했던 것들에 대한 조용한 보복이 진행되고 있다. 예컨대 ‘화이트 큐브(White cube), 그 권위적이며 불순물이라곤 티클 만큼도 용납하지 않는 근대의 기치이자 예술의 준엄한 검열이 작동하는 장(場), 모든 미술적 의미들을 발가벗기고 재규정하는 공간의 권력, 계몽과 순혈주의의 의사당, 보자르(Beaux-Arts)의 성전(聖殿)인 그것이 오유경의 우선하는 보복 대상이다.

 오유경은 화이트 큐브의 정체적 핵심에 결정적 타격을 가한다. 그 방식은 비닐 재질로 재현된 그것의 내면을 대기(大氣)보다 더한 가벼움, 부재보다 공허한 부재의 콘텐츠로 가득 채워 넣는 것이다. 헬륨 가스는 그 신념에 찼던 것의 내부를 다만 가벼움과 공허로 대체하고, 졸지에 유아용 놀이기구처럼 허공을 떠다니는 신세로 전락시킨다. 이리저리 허공을 배회하는, 유목적인 화이트 큐브를 상상해 보라. 그것은 더 이상 근대주의의 요체도, 견고하게 뿌리를 내린 거만한 권력의 기호이지도 못하다. 그 가뿐함, 그 민망한 부유로 명성은 실추되고 위엄은 오간 데가 없다. 차라리 부서지는 것이 덜 혹독한 것이 아닐까?


 보복은 조각에 대해서도 진행된다. 그 잘 난 3차원성, 질료성에 대한 지고(至高)의 애정, 묵직한 질량주의의 자만에 대해서도 보복의 예리한 메스가 가해진다. 로댕에서 브랑쿠시까지, 무어에서 세자르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꾀나 반동적으로 알려진 리처드 세라나 도널드 저드까지 포함하는, 천연대리석과 청동으로 무장한 세계, 그 장구한 역사에 대한 오유경의 질문은 실로 신랄하면서도 통쾌하다. 작품 <큐브먼트,cubement>에서 보듯, 작가는 단번에 그것들을 한낱 바람에조차 저항할 수 없는 취약한 것들로 전락시킨다. 고작 선풍기 바람에 날려 허공으로 떠오르고, 추락하고, 무너져 내리는 조각이라니! 3차원 예술의 통렬한 실추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보복 역시 근대적 개념일 뿐이다. 그 역시 부동의 신념에 근거하며, 자주 회복불능의 파괴와 손상을 야기하고, 무엇보다 상대를 절대적으로 타자화함으로써 결국 자신도 타자화시키는 계몽주의의 자기배반적 개념이다. 보복이 오유경 예술의 적지 않은 진실을 짚어내는 매력으로 인해 호명되긴 했더라도, 결과적으로 그 세계에 긴밀하게 부합하는 개념은 아니다. 작가가 자신의 예술을 통해 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피해자의식이나 맹목적 부정, 울화나 앙갚음 따위가 결코 아니다.

 화이트 큐브의 권력, 권위적 장르로서 조각에 맞서는 오유경의 사유를 관통하는 것은 치유의 형이상학이다. 그것의 강령은 결코 타파나 소멸 같은 것일 수 없다. 자기우월감에 도취되거나 자기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격투를 벌이는 것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이 세계의 차별성을 부각하기 위해 도입했던 개념인 보복의 실제는 사실 왜곡을 교정하고 상처를 싸매는, 곧 치유의 그것이다. 이 치유는 상처를 만들어내는 주체에 대한 명백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의료적 의미의 그것과는 구분된다. 이런 맥락에서 부유하는 화이트 큐브나 질량을 상실한 조각을 여전히 전위주의의 후예거나 반미학적 혁명 같은 모더니즘적 기제로 간주하려 드는 것은 이만저만한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가벼움은 오유경의 조형적 방법론일 뿐 아니라 미학적 지침이기도 한 것으로, 그것은 일테면 시(時)적 영혼의 한 족으로 난 창문 같은 것이다. 일테면 작가는 가벼움에도 관여하는 유희하는 미술관, 바람결을 타는 화이트 큐브, 온갖 규범에 관대한 열린 조각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는 선언서를 낭독하거나 혁명의 선두에 서는 노선과는 어떤 연관성도 없다. 그는 조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조각, 즉 치유하는 조각이나 치유된 조각을 생각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안정성과 영속적인 것의 상징이며, 권력과 사회구성의 시초를 의미합니다. 저는 그 쌓은 구조물 앞에 선풍기를 놓고 작동시키고 탑의 무너짐과 변화를 관찰했습니다. 물론 가벼운 종이상자들은 바람의 개입에 의해 이리저리 날라 다니고, 서로 충돌함으로서 위치가 변하며 무너지고 붕괴하지만, 얼마간의 시간 후 그 상자들은 동일한 바람의 힘에 의해 다시 쌓아집니다. 이때 쌓아짐은 아주 자유롭고 비형식적이었습니다. 이 붕괴는 파괴가 아닌 새로운 구축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오유경)

     

 치유는 파리 유학 초기부터 오유경을 사로잡은 주제였다. 프랑스에 체류하는 기간은 내내 그에게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자문하는 시기였다. “나의 창작행위와 그 결과물이 어떻게 아픈 시대와 상처 입은 사회를 싸매고 회복시키는 데 관여할 수 있는가? ” 수없이 스스로에게 던졌던 이같은 질문이 아니었다면, 파리의 뒷골목에 버려진 것들에 시선을 주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작가는 특히 부서지고 주저앉은 의자들로부터 시작했다. 기능이 정지되고 작동을 멈춘 것들을 되살려내기 위해 붕대, 숯, 소금 같은 ‘치유를 촉진하는’ 재료들이 동원되어야만 했다. 그 결과 부러졌던 다리는 다시 몸통에 붙고, 주저앉았던 것은 일으켜 세워져야 했다. 창작은 곧 치유의 행위여야 했고, 질료들은 치료제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작품은 치료의 성공을 입증하는 어떤 것이어야 했다.

 이 치유의 예술론 안에서 창작과 치유는 결코 서로 무관한 두 세계일 수 없다. 예술작품을 창작한다는 것은 상실되거나 망각되었던 본래의 의미에 다시 다가서고, 하나의 형식 안에 그것을 붙잡아 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걸작은 그 내부에 치유된 상처의 흔적이 내포하고 있을 뿐 아니라, 타자의 치유에 관여하기도 한다. 오유경의 오브제들에서 “무생물을 생명체로 전화시키는 힘과 모성의 따스함 같은 정감이 느껴지는” 이유이다. (장 미쉘 뒤라프)


 작가에게 ‘치유’는 물러설 수 없는 창작의 동기이자 궁극의 의미이기도 하다. 다음의 고백처럼 : “제 예술적인 목적을 애기하자면, 그것은 변화와 변형, 탈바꿈, 붕괴라는 개념을 통한 사회와 인간의 치유와 회복이라 생각하며, 잘못된 우리 시대의 비전을 고칠 수 있는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구체적인 힘, 즉 예술을 통해 관람객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로 다가가고자 합니다.” 고백처럼 작가의 치유 개념은 단지 미학적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치유의 대상은 ‘우리 시대의 잘못된 비전’으로까지 확장된다. 이윤추구가 최우선의 가치가 되고, 힘이 의미가 되며, 흥행술과 마케팅이 가치창출의 유력한 동기로 자리하고, 관계는 단절되고, 감수성은 메말라 가는… 하지만, 이 뿌리 깊은 병증, 불구화된 지성과 감성을 치유하는 것이 예술로서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오유경은 시적(詩的) 사유, 시적 감수성에 내재하는 잠재적인 치유역량을 믿을 것을 권한다. 이 세계에선 회이트 큐브와 같은 거대권력의 산물과 맞서는 데 요구되는 무기는 헬륨 가스로도 충분하다. 장구한 조각의 역사는 선풍기 바람으로 가볍게 전복된다. 모조지로 접은 큐브와 장엄한 형식미 사이의 간극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숙연함과 유희가, 보복과 치유를 동시에 끌어안는 시적 사유요 감수성의 한 드러남이다.

 파리 8대학 조형예술학의 석사과정을 마치면서 작가가 쓴 논문의 제목은 「예술가는 치료사인가」(Artiste est-il un guérisseur) 였다. 물론 반어법적인 질문이다. 예술가는 치료사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존재하는 어떤 치료사보다 더 유력하고도 시급하게 요구되는 치료사이기 때문이다. 단, 예술가가 그것을 내적으로 깊이 믿기만 한다면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시대의 더 많은 예술가들은 예술에 잠재해 있는 그 에너지를 믿지 못하고 있다.


© 2022 by OHYOUk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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